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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포인트] ‘알 권리’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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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포인트] ‘알 권리’가 뭐길래
  • 고일석
  • 승인 2020.02.12 1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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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왜 알아야 하나”
“알려지지 않을 권리”와 “알리지 말아야 할 필요”

언론은 툭하면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웁니다.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은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려는 숭고한 과업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국민의 알 권리'란 우리 국민들이 세상 삼라만상의 모든 사실들을 다 알아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국민의 알 권리’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카테고리의 네 가지 기준을 우선 생각해봐야 합니다. 첫 번째는 ‘무엇을 왜 알아야 하느냐’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알려지지 않을 권리’와 ‘알려지지 말아야 할 필요’와의 상충 문제입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11일 오후 경기도 과천 법무부청사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소장 공개 기준과 절차에 대해 말하고 있다.2020.2.11/뉴스1

“무엇을 왜 알아야 하나”

‘알 권리’의 대상이 되는 정보는 ‘공공과 관련된 사안이거나 개별 국민에게 개인적으로 관련된 공적인 사안들입니다. 개인 대 개인의 경우, 즉 길동이 집에 있는 숟가락이 원래 갑순이 집에 있던 것인지 아닌지 갑순이는 알 권리가 있지만 헌법적인 개념의 알 권리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즉 ‘알 권리’의 대상이 되는 정보는 공공의 성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공공의 성격을 띠고 있어도 왜 알아야 하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알고자 하는 정보가 공공과 개인의 권익과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 위험한 생물무기가 개발되고 실험되고 저장되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에 치명적인 위험을 안겨줄 수 있으며, 또한 국가가 그런 비인도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은 공공의 도덕성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런 정보는 공개되어야 하며 ‘알 권리’의 대상이 됩니다.

연예인은 법적으로 ‘공적인 개인’을 의미하는 ‘공인’으로 간주되지만 어느 배우가 자주 입는 속옷의 색깔이나 그가 누구와 무슨 문자를 주고받았는지 따위는 공공과 개인의 권익과 삶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따라서 혹시 누군가의 '궁금증'과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알 권리’의 대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알려지지 않을 권리”와 “알리지 말아야 할 필요”

알 권리의 대상이 되는 정보는 사실상 대부분 그 정보의 소유자가 국가나 공공기관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보의 소유자나 관계자가 개인일 경우는 ‘알려지지 않을 권리’와 부딪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현재 검찰이 정경심 교수 재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공개하고 있는 사적인 메신저 대화는, 그것이 혐의 사실과 직결되지 않는 한 ‘알려지지 않을 권리’가 있는 사생활에 해당합니다. 개인의 사생활은 ‘알 권리’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국가와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관리하는 정보 중에서 개인의 권익과 존엄을 해칠 수 있는 정보는 알 권리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또한 그것이 알려질 경우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위해를 줄 수 있는 정보는 알 권리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군의 미사일 기지의 위치와 미사일 보유 현황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알 권리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알려지지 말아야 할 필요’에 해당합니다.

 

2월 5일 비공개된 공소장을 보도한 동아일보
2월 5일 비공개된 공소장을 보도한 동아일보

흔히 말하는 ‘사회적 관심사’와 ‘알 권리’

언론이 소위 ‘알 권리’를 애기할 때 내세우는 명분은 대부분 ‘사회적 관심사’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필요와 이유’에 있어서 단순한 ‘관심’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특히 그것이 개인의 명예와 존엄과 관련된 사안이라면 단순히 ‘관심사’라는 이유만으로 ‘알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언론은 피의자나 참고인이 조사를 받기 위해 검찰이나 경찰에 출석하는 모습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도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게 누구라고 해도 그 모습이 공개되지 않는다고 해서 공공의 권익이 침해되거나, 그것이 공개되지 않을 경우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출석 장면 공개와 국민의 알 권리는 100만 광년 쯤 동떨어진 얘기입니다. 그냥 자극적인 장면을 매체에 담아서 국민들을 흥분시키려는 언론의 관음증을 ‘국민의 알 권리’로 포장하는 것뿐입니다.

 

‘자연히 공개될 사안’과 ‘알 권리’

혹시 ‘알 권리’의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여기에 또 하나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알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그것을 주장하지 않으면 ‘알 권리’의 대상이 되는 정보가 은폐되거나 공개되지 않을 우려가 있을 경우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얘기되고 있는 공소장은 재판이 개시되면 자연히 공개되는 내용들입니다. 우리나라의 재판이 공개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재판 개시 이전에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사기 사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관계자가 검거되어 기소가 돼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모르는 채 계속 사기 피해를 입고 있고, 다른 범죄자에 의해 같은 수법의 사기 행위가 지속되어 새로운 피해자가 계속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하루라도 빨리 혐의 내용을 공개하여 피해자의 사기 피해를 종료시키고 동종 범죄의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을 줄일 필요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비록 공공의 권익과 직결된 사건이라고 해도 굳이 재판 개시 전에 시급하게 공소장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은 ‘알 권리’의 원론적인 검토에 대한 것입니다. 공소장 공개 여부는 이런 원론에다가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더 깊이 검토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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