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 전국민지급으로 죽다 살아난 사람들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20-04-28 05: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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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지급으로 홍역을 치루고 있는 지자체 공무원들
신청서·정보동의서 수기 작성, 직접 입력
가장 까다로우면서 민원을 유발하는 ‘심사’ 과정
23일 오후 경남 고성읍 행정복지센터에서 대상자들이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고 있다. 경남도는 이날부터 내달 22일까지 지원금 신청서를 읍면동 주민센터를 통해 접수 받으며, 거리두기 실천을 위해 5부제로 진행된다. 2020.4.23/뉴스1

지원금 선별지급으로 홍역을 치루고 있는 지자체 공무원들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이 전국민지급으로 귀결되어 내일(29일)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할 전망이다. 선별지급과 전국민지급 사이에서 전국민지급을 가장 간절하게 원했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바로 신청과 지급업무를 실제로 담당할 지방자치제 공무원들이다. 이들은 정부의 재난지원금이 선별지급으로 이루어질까봐 정말 벌벌 떨고 있었다. 자체 재난지원금을 선별지급 방식으로 지급하느라 말도 못할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고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국가 재난지원금이 지급되기 전에 자체 지원금 지급을 시작했다. 경기도를 제외한 지자체는 모두 당초 정부가 제시했던 70% 선별지급을 모델로 중위 100%, 즉 소득 50%의 주민을 대상으로 지급했다.


사람들은 이 지급과정을 이렇게 상상한다. “인터넷이든 방문이든 주민이 신청을 하면 담당 공무원이 전산을 통해 소득 50%에 해당하는지 확인한 뒤에 해당이 되면 지원금을 지급하고 해당되지 않으면 부적합을 통보한다.” 아주 간단하다. 우리는 대개 이런 서비스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프로세스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16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정2동 주민센터 앞에 설치된 야외 부스에서 주민들이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 관련 안내를 받고 있다. 양천구 신정2동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을 위한 야외 대기 부스를 이날 설치했다. (양천구 제공) 2020.4.16/뉴스1
16일 오후 서울 양천구 신정2동 주민센터 앞에 설치된 야외 부스에서 주민들이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 관련 안내를 받고 있다. 양천구 신정2동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위해 재난 긴급생활비 신청을 위한 야외 대기 부스를 이날 설치했다. (양천구 제공) 2020.4.16/뉴스1

신청서·정보동의서 수기 작성, 직접 입력


우선 50%든, 70%든, 100%든, 혹은 지원금이든, 기본소득이든, 이런 대규모의 재원을 대규모의 국민에게 지급하는 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다. 그래서 원래는 새로운 지급 시스템을 구축해서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그럴 시간이 없다.


그래서 보건복지부 ‘행복e음시스템’을 활용한다. 복지 지원을 위한 이 시스템은 세무자료,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개인의 소득과 관련된 모든 자료들이 통합 연결되어 있다. 이 자료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시스템에서 개인의 자료를 검색하고 출력하려면 신청인의 개인정보동의가 필요하다.


이 개인정보동의 과정을 처리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이 아직 없다. 그래서 신청자는 지자체 홈페이지에서 동의서 서식을 받아 수기로 기입한 후 스캔을 받거나 사진을 찍어서 지자체로 보낸다. 혹은 주민센터를 방문해 직접 작성하여 제출한다.


신청서도 별도로 작성해야 한다. 정부의 지급안이 가구별 지급으로 돼있기 때문에 가구원의 상황을 기입해 같은 방식으로 지자체에 전송하거나 제출한다. 그러면 주민센터 공무원은 이 신청서를 받아 가구원 상황을 비롯해 기입된 내용이 맞는지 주민등록 전산망을 띄워 일일이 대조해 확인한다.


그리고 기존에 코로나19관련 지원을 받고 있는 주민이나 가구는 대상에서 제외된다. 서울시의 경우 저소득층 한시생활지원사업, 특별돌봄쿠폰, 긴급복지지원, 코로나19 생활지원비 지원(14일 이상 입원 격리자), 실업급여, 청년 긴급수당의 지원책이 실시되고 있다. 이들 지원책의 수혜자들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것도 확인해서 걸러내야 한다.


이렇게 접수받고 확인하고 1차 선별한 신청서와 개인정보동의서의 내용을 주민센터의 공무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행복e음시스템에 입력한다.


행복e음시스템시스템도 최소 국민 50%의 소득자료를 검색하고 판단할 만큼 대용량의 작업을 처리할 수 없다. 그래서 처음에 보건복지부는 한 건의 자료를 입력받아 해당자의 소득자료를 모두 추출해 회신하는 데 3일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 가동을 해보니 최소 1주일이 걸리고 있다.


신청인이 신청서와 개인정보동의서를 작성해 온라인이나 방문을 통해 제출하면, 이를 공무원이 일일이 확인을 하고 시스템에 입력한 뒤 조회 요청을 하면 1주일 뒤에나 소득자료가 지자체에 회신되는 것이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일동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수영 양천구청장, 황명선 논산시장, 정원오 성동구청장, 염태영 수원시장. 2020.4.23/뉴스1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일동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수영 양천구청장, 황명선 논산시장, 정원오 성동구청장, 염태영 수원시장. 2020.4.23/뉴스1

가장 까다로우면서 민원을 유발하는 ‘심사’ 과정


회신이 되면 구청에서 받아서 심사를 한다. 신청인이 50%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판단해 해당 주민센터에 통보하면 주민센터에서는 이를 받아 각 신청인에게 통보한다. ‘부적합’으로 판정된 신청인은 거의 ‘이의신청’을 제기한다. 그러면 입력에서 1주일간의 조회, 회신, 심사, 통보의 과정을 한 번 더 거친다.


소득 50% 이하 가구가 대상이므로 신청자는 대략 인구의 30% 정도로 추산된다. 즉 인구 10만 명 자치단체라면 대략 3만 명 정도가 신청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런데 이미 그 두 배는 이미 넘었고, 지자체에 따라서는 인구의 90%가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해당될지 안 될지 모르므로 일단 신청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사 결과 부적합판정을 받고 수긍할 수도 있지만,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자영업자의 소득은 2018년의 소득을 기준으로 한다.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지자체에 따라서는 이런 경우 별도의 소득이나 매출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받아 지급대상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런 보완조치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지자체는 이와 관련된 민원이나 추가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더 머리가 아픈 것은 부정신청이나 신청 오류의 경우 이루어지는 ‘환수’ 조치다. 그런데 환수는 심사 후 이의신청을 처리하는 것보다 100배는 더 어렵다. 지속적으로 지급이 되는 것이라면 그 다음 회차를 빼는 식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그런데 상품권으로 지급한 것을 현금으로 회수하기도 어렵다. 원칙만 세워진 것이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환수를 해야할 지에 대한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이 정도가 소득 50% 기준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데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다. 신청에서 심사를 거쳐 선불카드든 상품권이든 실제로 지급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최소 2주일이 걸리고 있다. 만약 소득 70%를 기준으로 국가 재난지원금이 지급된다면 이 과정을 또 그대로 반복해야 하고, 규모는 훨씬 더 커진다. 그러면 지금 2주 걸리는 소요 기간은 한 달이 넘어갈지도 모른다.


예결위 여야 간사들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원장실에서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추경안 논의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오른쪽부터 이종배 미래통합당 간사, 박주현 민생당 간사 내정자,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간사, 염동열 미래한국당 간사 내정자. 2020.4.27/뉴스1
예결위 여야 간사들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원장실에서 긴급재난지원금 관련 추경안 논의를 마치고 나서고 있다. 이들은 28일 예결위, 29일 본회의 처리에 합의했다. 2020.4.27/뉴스1

선별지급 방침에 벌벌 떨었던 지자체 공무원들


전국민지급이 이루어지면 지자체에 따라 신청서를 자필로 작성해 제출하느냐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처리하느냐 차이만 있을 뿐,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만과 민원을 야기하는 소득자료 열람과 심사 과정이 생략되고, 더구나 ‘회수’의 필요성도 크게 줄어든다. 상품권의 부정 사용만 잘 지켜보면 된다.


이러니 이미 지자체 지원금 지급 업무로 녹초가 돼있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선별지급으로 결정될까봐 벌벌 떨고, 전국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 소속 지자체장들이 국회 정론관을 찾아 제발 전국민지급으로 해달라고 애원을 하듯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자체 공무원들이 재난지원금 지급 업무에만 매달릴 수도 없다. 여전히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코로나19 방역업무도 해야 하고, 몇 명인지 집계하기도 어려울 자가격리자 관리도 해야 하며, 기존의 업무도 차질없이 다 수행해야 한다.


홍남기 부총리는 재난지원금 지급 방침을 설명하면서 “신속성·합리성·형평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미 모든 지자체에서 경험했듯이 선별지급은 신속성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고,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으며, 형평성은 더더욱 어불성설이다.


경기도의 개인별 지급과는 또 다르게 가구별 지급은 가구원 확인을 위한 또 한 단계의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재부의 재난지원금 지급방식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손이 많이 들어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식으로 설계됐다.


이미 기재부도 동의하고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기재부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릴 수밖에 없는 방식을 그토록 고집했는지 이유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기재부가 고집했던 방식을 그대로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는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전국민지급 방식으로 집행되더라도 지자체 공무원들은 또 한 번 수고를 해야 한다. 그래도 선별지급으로 집행됐을 때를 생각한다면 한 마디로 죽다 살아난 기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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