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가가 집 있으면 자금출처 밝혀야 하는 미친 사회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20-05-19 20: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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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2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428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0.2.26/뉴스1

집을 사면 경우에 따라 국세청이 자금 출처의 소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집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입 자금의 출처를 밝히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그런 이상한 일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곽상도 “경매자금 출처 해명하라”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곽상도는 지난 17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당선인이 2012년 2억원대 아파트를 경매로 구매했다”며 “해당 아파트 자금 출처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미친 것 아닌가? 경매로 사든 매매로 사든 자금출처를 왜 밝혀야 하나. 이에 대해 곽상도는 “등본을 보면 근저당 등 담보물권설정이 없다. A아파트를 현금으로 산 것”이라며 “윤 당선인이 현재 기부금 유용 의혹을 받는 만큼 2억원이 넘는 A아파트 자금 출처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즉 대출을 끼고 산 것도 아니고 현금으로 샀으므로 기부금을 유용해 집을 산 것 아니냐는 거다.


이는 곧 사회운동만 해온 윤미향 전 대표가 현금이 있을 리 없으니, 경매를 위해 지불한 현금은 곧 후원금을 유용한 것일 수 있다는 지극히 악의적이며 단세포적인 논리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야 마땅하다는 논리다.



윤미향 “집 팔아 마련 → 예금과 돈 빌려 마련”


윤미향 전 대표는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윤미향 당선인께서 현금으로 아파트를 경매받았다, 그렇게 많은 현금을 어떻게 가지고 있느냐, 이 의혹인 것 같다”는 사회자의 질문에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 살던 아파트를 팔았다”며 “당연히 경매는 현금으로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곽상도는 곧바로 “지금 사는 A 아파트(경매로 취득)는 2012년 3월 29일 경매로 낙찰받았고 (본인이 살았다는) B아파트는 2013월 1월 7일에 매도했다”며 “윤 당선인의 해명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윤 전 대표는 “입찰금액 중 10%를 입찰 보증금으로 내고, 2012년 4월 남은 2억340만원 중 1억5400만원을 정기예금과 예금통장 등 3건을 해지해 충당했고, 4000만원은 가족을 통해 차입, 3150만원은 기존 개인 예금”이었으며 “옛 아파트 판매금이 1억9895만원인데 나중에 빚을 갚고 해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기존에 다른 해명을 내놓은 이유에 대해서는 “2012년 일이라 아파트 경매를 언제 했고, 언제 팔렸고, 이런 것을 다 기억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야당과 언론은 ‘말 바꾸기’, ‘오락가락 해명’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기억의 문제를 떠나서라도 기존 주택을 팔아 상환하기로 하고 적금을 깨고 자금을 융통해 경매 대금을 지불한 뒤 기존 주택을 팔아 빌린 돈을 상환했으므로 이는 곧 살던 아파트를 팔아 지금의 아파트를 경매로 매입한 것이다.



김성태·김현아 “1가구 2주택 해명하라”


그러자 이번에는 1가구 2주택을 들고 나왔다. 18일 곽상도와 같은 당의 국회의원 김성태는 "18일 주택 등기부등본을 분석한 결과 윤미향 당선자가 지난 1999~2002년 경기 수원의 1999∼2002년 경기 수원의 M빌라와 H아파트를 2년 넘게 동시에 보유했고 2012년 H아파트를 소유한 채 수원의 G아파트를 경매로 2억2600만 원에 구입하는 등 과거 수년간 '1가구 2주택자'로 지내온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 과정에서 한 번도 부동산 담보대출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또 다른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김현아는 “윤 당선인이 1가구 2주택이었던 1999~2002년은 외환위기 이후 집값이 하락한 상태여서 부동산 담보대출이 유행이었는데 대출없이 집을 샀다는 건 이례적”이라며 “윤 당선인은 일시적 2주택자였는데 시민단체 활동을 하면서 현금을 이 정도로 가지고 있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결국 30년 동안 사회운동만 해온 윤 전 대표에게 무슨 돈이 있겠느냐는 것이며, 따라서 대출도 끼지 않고 구입했던 지금까지의 주택 거래 이력은 곧 후원금을 유용하거나 착복한 결과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운동가가 집 있으면 후원금 유용 의심 받아야 하나?


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난한 친구가 어느 날 값비싼 샤프펜슬을 쓰기 시작했다거나, 월드컵만 신고 다니던 친구가 갑자니 나이키를 신고 학교에 오면 온갖 야릇한 뒷소문이 돌아다니던 것은 아마도 누구나 한 번 쯤은 경험한 일일 것이다.


지금 윤미향 전 대표가 그 시절 가난한 친구의 꼴이 되고 있다. 단지 집이 있다는 이유로 “후원금을 빼돌려 집을 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그런 의심은 최소한 ‘근거’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심을 할 수 있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의연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정의연의 회계장부와 예금계좌의 잔액이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고, 장부상의 수입지출 내역과 예금 또는 현금의 입출금 내역이 차이가 나는 뭔가가 나온 것도 아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갑자기 비싼 옷을 입고 나타난 가난한 친구를 보고 수군거리는 것은 철이 없으니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다 큰 어른들이 단지 사회운동만 한 사람이 집이 있다는 이유로 곧바로 후원금 유용을 의심하고, 그것도 국회의원 씩이나 되는 인간들이 대놓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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