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대 표창장] ‘시연 vs 시연’... 변호인단 전략에 말려든 검찰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6 17: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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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 과정’ 대신 ‘정황 증거’에만 집착해온 검찰
‘위조 과정’의 일부만 재현한 ‘눈가림 시연’
가장 중요한 ‘한글 서식’ 작성 과정 건너뛰어
검찰의 최고 실책, ‘희미해진 하단부’
▲ 정경심 교수 측 김칠준 변호사가 15일 재판이 끝난 후 이날 재판에서 검찰이 시연으로 제시한 출력본(오른쪽)과 부산대에 제출한 표창장 사본을 비교해보이고 있다./유튜브 '빨간아재' 영상 캡처

 

10월 15일 열린 정경심 교수 공판에서 검찰은 ‘표창장 위조 시연’이라며 30초의 짧은 시연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는 ‘시연’으로 표창장 위조 주장의 진위를 가리려는 변호인단의 전략에 검찰이 말려든 결과였다. 더욱이 ‘30초 시연’의 결과는 실제와도 달랐고, 그 내용도 검찰이 주장해온 공소사실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었다.


‘위조 과정’ 대신 ‘정황 증거’에만 집착해온 검찰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으로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검찰의 공소 사실이 공개되자마자 “검찰이 한 번 만들어보라, 그대로 되나”라는 여론이 곧바로 끓어올랐었다. 그러나 검찰은 그동안 재판을 통해 사건의 핵심인 ‘위조 과정’보다 ‘위조의 정황과 배경’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다. “내가 만들어주지 않았다”는 최성해 전 총장의 주장을 바탕으로 학교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표창장이 학교의 공식 계통을 통해 발급되지 않았다”는 증언을 반복하게 했다.

검찰은 7월 23일 열린 23차 공판에서 있었던 포렌식 수사관에 대한 신문 과정에서 소위 ‘타임라인’을 제시하며 표창장 위조 과정을 처음으로 자세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이날 신문도 검찰이 아닌 재판부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때의 쟁점도 ‘위조 과정’이 아닌 “강사휴게실 PC가 2016년 당시 방배동 자택에 있었다”는 검찰 측 주장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변호인단은 한 달 후 열린 25차 공판의 포렌식 수사관에 대한 반대 신문을 통해 “검찰이 제시한 타임라인은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각종 파일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며 “컴퓨터와 프로그램에 숙달되지 않으면 (검찰이 제시한) 38분 안에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에 재판장이 “제일 좋은 것은 재판정에서 직접 만들어보는 것. 나중에 기회 드릴 테니 검찰청에 실력 좋은 사람이 만들어보라고 하라”며 ‘표창장 위조 시연’을 요구했다. 이때 검찰은 “이미 만들어져 있으니 시연은 필요없다”며 거부했으나 15일 열린 재판에서 검찰은 “30초면 된다”며 ‘위조 과정’의 일부를 시연해보였다.

이로써 동양대 표창장 재판은 “검찰 주장대로 하면 실제로 표창장이 만들어지는가”라는 핵심 쟁점으로 진입하게 됐다. 그동안 주변 정황에만 지루하게 매달리던 재판의 쟁점을 ‘표창장 위조 과정’으로 끌고 들어오려던 변호인단의 전략에 검찰이 말려든 것이다.

검찰이 끝끝내 시연을 거부했다면 변호인단의 ‘반대 시연’은 ‘나홀로 퍼포먼스’에 그칠 우려가 있었지만, 검찰이 일부라도 시연을 보였으니 변호인단의 ‘반대 시연’이 더욱더 힘을 얻게된 것.


‘위조 과정’의 일부만 재현한 ‘눈가림 시연’

‘위조 시연’을 보이려면 검찰이 주장하는 첫 번째 단계, 즉 ‘아들 상장’을 스캔하는 과정부터 보여줬어야 했다. ▲동양대 상장 스캔 이미지 전체 캡처 ▲캡처된 이미지 워드문서에 삽입 ▲'동양대학교 총장 최성해' 부분만 캡처 프로그램으로 오려내 그림파일 생성(총장님 직인파일.jpg) ▲상장서식 한글파일에 내용 기재 후 '동양대학교 총장 최성해' 이미지 파일 넣은 후 PDF 파일출력 등으로 이루어진 검찰 주장 위조 과정은, 컴퓨터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정경심 교수가 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숙달된 전문가가 한다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검찰은 그 과정 중에서 ‘워드 문서에서 ▲'동양대학교 총장 최성해' 부분만 캡처 프로그램으로 오려내 그림파일 생성(총장님 직인파일.jpg) ▲상장서식 한글파일에 내용 기재 후 '동양대학교 총장 최성해' 이미지 파일 넣는 과정만 보여줬다.

이는 검찰이 주장해왔던 ’위조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7월 23일 재판에서 제시했던 ’타임라인‘과 다른 내용이었다. 변호인단은 즉각 “공소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했지만 검찰은 이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 7월 23일 재판에서 검찰이 제시했던 타임라인



가장 중요한 ‘한글 서식’ 작성 과정 건너뛰어

특히 소위 ‘위조 과정’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인 ‘한글 서식’ 작성 과정을 건너뛴 채 이미지만 옮겨붙이고 출력한 것은, 검찰 시연이 ‘눈가림 시연’이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글 서식’은 표창장 위조 혹은 제작의 중심 부분으로, 일련번호의 길이, (검찰 주장) 이미지 삽입 문제 등으로 동양대 상장 서식을 매우 크게 여러 번 조정해야 표창장의 모양대로 출력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검찰 주장 타임라인에 따르면 이 과정은 12분 만에 이루어졌으며 변호인단은 “정경심 교수의 능력으로는 한글서식 조정과 작성을 12분 만에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검찰은 이런 과정을 생략한 채 ‘미리 세팅된 서식’에 하단부 이미지만 옮겨서 출력한 것이다. 원래의 서식을 조 양의 표창장이 출력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작업이 12분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검찰 주장 ‘정황 증거’ 눙치고 지나간 검찰

또한 검찰이 보여준 시연은 '동양대학교 총장 최성해' 부분과 직인이 위아래로 눌린, 즉 옆으로 길쭉하게 당겨진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다. 7월 23일 재판에서 재판부는 “직인의 모양이 정사각형이 아닌 직사각형”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하고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직인의 모양이 정사각형이 아니고 직사각형으로 늘어나 하단을 늘렸다는 것인가”라고 검찰 측에 물었다. 이에 검찰은 “원본 파일을 보면 편집하는 과정에서 크기를 조절하는 문제가 생겨 (직인 파일)을 가져다 붙이면서 늘린 것”이라며 “하나의 (위조) 정황 증거라 볼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은 15일 시연을 보이면서 워드에 있는 아들 상장의 하단부를 오려내 한글 서식에 옮긴 후 그대로 상장용지에 출력했다. “직인의 모양이 정사각형이 아니고 직사각형으로 늘어난 것이 편집 과정에서 늘렸기 때문”이라며 이를 위조의 정황 증거라고 주장했던 검찰이 정작 시연 과정에서는 그 부분을 눙치고 지나간 것이다.

 


▲ 정경심 교수 측 김칠준 변호사가 15일 재판이 끝난 후 이날 재판에서 검찰이 시연으로 제시한 출력본(오른쪽)과 부산대에 제출한 표창장 사본을 비교해보이고 있다./유튜브 '빨간아재' 영상 캡처

 

검찰의 최고 실책, ‘희미해진 하단부’

이날 검찰 시연의 가장 큰 실책은 ’이미지 캡처로 오려붙인 하단부‘가 본문의 글자에 비해 색깔이 희미해진 채 출력된 것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정경심 교수 측 김칠준 변호사가 재판 직후 취재진들에게 공개한 검찰 출력본에는 하단부 부분이 본문보다 색깔과 서체가 희미한 것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시민들과 변호인단이 “캡처된 이미지를 그대로 출력하면 해상도에 차이가 생겨 글자와 직인의 색깔이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해온 것을 검찰이 입증해준 것이다. 김 변호사는 부산대에 제출된 표창장 사본과 검찰의 시연으로 출력된 결과물을 비교해 보이며 “사본에서는 본문은 희미한 대신에 총장과 직인 부분은 아주 선명하고 진하게 돼있으나 검찰 출력물은 이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오늘 제시한 시연 내용은 물론, 전 과정에 걸쳐 검찰 주장으로는 위조됐다는 표창장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을 다음 재판에서 시연을 통해 확인시켜드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변호인단 ‘반대 시연’ 예정... 제 무덤 스스로 판 검찰

검찰은 1년 가까이 이어진 공판 과정을 통해 ’위조 과정‘의 입증은 애써 외면해왔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검찰 주장대로는 위조가 불가능하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검찰은 7월 23일 공판에서 야심차게 ‘타임라인’을 제시했지만 이는 재판부로 하여금 “직접 만들어보라”는 시연 요구를 이끌어내는 결과를 낳았다.

검찰은 이를 거부했으나 결국 자신들이 주장하는 과정의 일부를 시연으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오히려 그동안 시민들과 변호인단이 주장해온 “이미지 캡처로는 같은 색상으로 위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검찰 스스로 입증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이 제 무덤을 스스로 판 것이다.

또한 공소장과 포렌식을 통해 주장해왔던 ‘전체 위조 과정’은 물론 15일 보여준 ‘일부 시연’에 대해서도 변호인단이 하나하나 반박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줬다. ‘정황’에만 집착하던 검찰을 ‘위조 과정’이라는 핵심 쟁점으로 끌고 들어와 시연으로 검찰 주장의 허구를 입증하려는 변호인단의 전략에 검찰이 결국 말려들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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