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 반대"... 서울대 이준웅 교수의 심각한 비논리와 궤변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20-10-12 19:2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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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이준웅 교수의 학자로서의 신뢰뿐만 아니라, 언론학자의 존재 이유가 묻고 싶어진다. 언론학자는 언론사를 위해 존재하는가, 언론 수용자인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이 단지 언론사에 피해가 간다는 이유 하나로 특정 제도를 반대하는 것이 과연 언론학자로서 할 일인가?

 

서울대 이준웅 교수는 언론학자로서 내가 별로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다. 정권 초기 김의겸 전 한겨레신문 기자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됐을 때 이 교수는 이를 맹렬히 비난한 적이 있다. 언론계 인사가 정부 홍보직으로 가는 것은 언제나 시비의 대상이므로 이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 교수는 이 당시 아무리 페이스북에 올린 개인적인 글이라고 해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온갖 비논리와 궤변들을 동원했었다.

그런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반대하는 내용의 10월 12일 경향신문 기고문 <[미디어 세상]징벌을 더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없다>도 그와 유사한 비논리와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워낙 뒤죽박죽이라 이해하기 좋게 정리하는 데 있어 내 능력의 한계가 느껴질 정도다. 

 

 

형사처벌과 징벌적손해배상, 둘 중 어느 것을 해야 할까?

 

이 교수의 주장은 “형사처벌이 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이 왠말이냐”를 골자로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옳은 말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피해유발행위에 대한 형사적 처벌의 전통이 없는 영미계열 국가에서 발전해온 제도다. 그래서 형사처벌을 대신하여 실제 발생한 피해 이상의 배상을 명령하여 징벌의 효과를 함께 갖는 것이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취지다. 


그러나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병립이 불가하다면 우리는 둘 중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까? 형사처벌을 존속한 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지 않는 것이 옳을까,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대신에 형사처벌을 배제해야 하는 것이 옳을까?

여기에 대해 이준웅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불가하고 형사처벌을 존치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이 교수는 이 칼럼에서 “유엔 인권위원회는 2015년 12월 ‘대한민국 제4차 정기보고서 최종견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명예훼손을 비범죄할 것을 권고했다”는 사실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 교수는 유엔의 이 권고에 반대하고 있는 것일까?

징벌적 손해배상제와의 병립 여부를 떠나, 신체에 대한 피해와 구체적인 재산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모욕과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적 처벌을 배제하는 ‘모욕죄/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는 우리나라에서 꾸준하게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우리나라 법원도 법정형이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인 명예훼손죄의 양형에 있어 징역형보다는 주로 벌금형을 선고해왔다. 비록 형사처벌 대상이기는 하더라도 말 그대로 극악무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인신구속형을 내리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교수가 ‘모욕과 명예훼손의 비범죄화’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형사처벌이 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이 왠말이냐”는 문제의식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려면 형사 처벌을 폐지해야 한다”로 이어져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이 교수의 칼럼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만 반대하는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그렇다면 명예훼손의 비범죄화를 권고한 유엔 인권위원회 견해는 왜 인용했는가?

 

 

'정쟁의 도구'를 반대 이유로 내세우는 이준웅 교수


또한 이 교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반대하는 이유에 ‘정쟁의 대상’, ‘정쟁의 도구’, ‘정파적 소모전’ 등을 들고 있다. 한 마디로 언론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어떠한 행위도 ‘정치적 시비’를 유발시키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비논리를 넘어선 ‘궤변’이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한 근거로 “실제 형사재판에서는 발언자가 공익을 위해 발언한 것인지, 그리고 발언자가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따진다. 그러나 공익과 상당성을 판단한 결과를 보면 일관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는 언론의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례가 대단히 정교하면서도 일관성 있게 축적되어 왔다고 보고 있지만, 이는 의견과 시각 차이라고 할 수 있으니 넘어가기로 하자.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되면 이에 대한 기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영미법에서 적용되는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 원칙이 될 것이다. 현실적 악의에 대한 정의는 대단히 간명하다. “거짓임을 알거나 거짓인지 여부를 무모하게 무시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 원칙에 대해서는 나보다 이준웅 교수가 훨씬 더 잘 알 것이다. 이에 대한 입증 책임을 원고가 지도록 하는 영미법의 원칙을 수용하고 있지 않을 뿐, 우리나라 법원은 이미 이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여부를 판단하는 확립된 기준으로 삼고 있다.

“언론이 거짓임을 알거나 거짓인지 여부를 무모하게 무시하고 보도하는 행위”에 대해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무슨 ‘정치적 시비’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가? 설사 특정 사건에 대한 소송이 적절한지 여부가 시비가 될 수 있어도 그것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가?

어떤 제도든, 어떤 기준이든 시비의 소지를 담고 있다. 시비의 소지가 없는 제도나 기준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제도의 도입 여부는 필요성과 적절성에 의해 판단되어야 한다. “시끄러워진다”는 것을 반대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마땅히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냥 둘러대는 것이다. 

 

 

▲ 언론 관련 재판 손해배상 인용액 분포/<2019년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 언론중재위원회>

 

언론에 의한 피해의 구제는 충분한가?

이 교수는 또한 “언론중재 등 대안적 피해구제 제도가 엄연하다”는 것을 반대 이유의 하나로 들고 있다. 피해구제 제도가 엄연히 있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이 왜 필요하냐는 얘기다. 이것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이 교수가 보기에는 언론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과 인격권 침해의 문제가 문명 사회에서 그럭저럭 있을 법한 정도로 생각되는 모양이다. 또한 그에 대한 피해구제도 그냥저냥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정말 참담하다.

언론중재는 재판에 의할 경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피해구제를 좀 더 신속하게 하기 위한 장치이지, ‘대안적 피해구제 제도’가 아니다. 대안적 피해구제라고 한다면 금전 보상이나 정정보도 등의 명령 외의 다른 구제 방식을 얘기하는 것이어야 하지만, 언론중재나 재판이나 피해구제의 방식과 내용은 동일하다.

문제는 법원 판결이든 중재위 결정이든 현행의 제도와 관행이 언론보도로 인한 명예훼손의 피해 구제를 충실하게 하고 있느냐의 여부다. 언론중재위원회가 매년 발간하고 있는 ‘언론관련판결 분석보고서’의 2019년 분석을 보면 원고 승소 판결 중 500만원 이하의 배상액이 결정된 경우가 53.8%다. 가장 적은 금액은 50만원이다. 

소송비용은 패소자가 부담하게 되어 있으나 승소한다고 해도 모든 비용이 실비로 보상되지 않으므로, 소송비용을 감안한다면 500만원 정도의 손해배상으로는 피해구제의 실익이 없다. 이는 배상액 자체로서 피해구제가 충분하지 않은 것은 물론, 이로 인해 소송을 통한 피해구제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소송해봐야 남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 이준웅 교수는 언론중재 제도 등이 있으니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필요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형사처벌은 형사처벌일 뿐 피해자에 대한 피해구제가 될 수는 없다.

 

 

언론사가 싫어하니 하면 안된다는 이 교수

이 교수는 "억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민주주의를 강화할 수 없다"는 말로 글을 맺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목표는 국민의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결코 언론기관에 무한정의 자유를 부여하고 언론사에 의해 자행되는 국민에 대한 가해 행위를 방임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이 칼럼을 살펴보면 이준웅 교수가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반대하는 이유는 딱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언론사가 싫어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준웅 교수의 학자로서의 신뢰뿐만 아니라, 언론학자의 존재 이유가 묻고 싶어진다. 언론학자는 언론사를 위해 존재하는가, 언론 수용자인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이 단지 언론사에 피해가 간다는 이유 하나로 특정 제도를 반대하는 것이 과연 언론학자로서 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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