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서사'를 허무는 자는 누구인가?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19-11-19 07: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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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부른 사실 확정, 자의적인 도덕적 판단
'진보의 서사'는 그렇게 무너져간다


침묵하던 진중권이 갑자기 뒤늦게 참전하여 갖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조국 전 장관에 대해 비판에 대해 나름 참고할 수 있는 사고를 접할 수 있어서 조금 반갑기는 하다.


진중권은 아마도 조국 전 장관을 방어하는 측의 사고에 "법적으로만 문제 없으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조국 전 장관도 후보자 시절 청문회 정국 초기에는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답변을 많이 했지만 곧 "불법 여부와 관계 없이 성찰하고 반성하겠다"고 한 뒤 수 차례 사과했다. 대통령도 그를 임명하면서 사과했고, 집권당 대표도 사과했다.


나는 성찰과 반성은 필요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과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조국 본인이나 대통령이나 당 대표는 "분노하는 심정에 대해 이해한다"는 뜻을 '사과'라는 양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처럼 사태에 임하는 주요 인물들이 취한 태도처럼 조국 전 장관을 방어하는 사람들은 결코 "법적으로만 문제 없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알기 쉬운 예로 누군가 외도를 했다면 간통죄도 사라진 이 마당에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 없지만 그가 고위직에 임명되는 것을 용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법적 판단을 넘어선 도덕적, 윤리적 판단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있어야 하는 것은 사실에 대한 입증이다. 법적 판단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에 대한 입증 없이 도덕적 재단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가 "쟤 바람 폈대요"라고 한 마디 했다고 해서 그에게 어떤 불이익을 내릴 수는 없다.


진중권은 지난 번 정봉주 미투 사건에서 보듯이 그로서는 (나 역시도) 도저히 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한 판단을 너무 쉽게, 너무 빨리 한다. 이는 진중권만 그런 게 아니라 조국 전 장관을 비난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다.


그들은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단순한 가능성을 그대로 사실로 못박아버린다. 그렇게 일단 던져놓고서는 아주 작은 것이라도 사실이기만 하면 있는 대로 비난할 태세를 갖춘다.


유시민과 진중권이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법적 판단'에 대해 주로 얘기를 했다면, 그것이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법적인 판단은 '사실'에 대한 1차적인 입증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그래서 법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 그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재판에서의 판단이 모든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도덕적, 윤리적인 판단을 내릴 기준은 된다.


그러나 지금은 "조 양이 스펙 쌓기를 엄청나게 했다"는 것, "정경심 교수가 투자를 했다"는 정도의 것 말고는 확정된 사실이 아무 것도 없다.


공소장에 기재된 내용들은 검찰의 주장일 뿐 결코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비록 검찰의 수사 결과를 확정된 사실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것을 기반으로 법적인 판단을 넘어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재단을 내린다는 것은 그 자체가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다.


다른 학생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스펙이라는 의대 연구실 인턴도 부모가 인턴에서부터 제1저자 등재까지 요구하거나 청탁했는지 여부가 도적적 판단의 유일하며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부모가 직접 개입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이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기회라는 것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이토록 모질게 비난할 수는 없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기회라는 것은 이 세상에 부지기수로 존재하며, 그것이 어떤 내용의 것이라 지금처럼 이렇게 화를 내지는 않는다.


진중권 교수가 석사 학위 소지자로 교수로 임용된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기회에 해당하지만 그것 가지고 화를 내는 사람은 없다. 진중권 교수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노력을 하고 훨씬 높은 학문적 업적을 쌓고도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는 수많은 연구자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솔직히 말해 진중권 교수가 "유명하다는 것" 말고 그 분들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것을 부도덕하다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사실이 확정된 이후라도 그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은 그 기준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위에서 예로 든 불륜의 경우는 사실이 확인되면 얼마든지 도덕적 비난이 가능하지만, 누군가의 딸이 다른 학생이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인턴 혹은 체험학습의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이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엇갈린다.


진중권이 "그건 부도덕한 것이야"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나까지 자동적으로 그것을 부도덕한 행위로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진중권의 도덕적 기준을 일반적인 원칙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진중권은 "법적으로만 문제 없으면 그만"이라는 (실제로 그렇지도 않은) 태도가 이제까지 ‘진보’를 지탱해온 서사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걱정한다.


그러나 사실 여부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제 혼자 섣불리 사실 관계를 확정해 버리고, 그것을 토대로 어떤 도덕적 판단을 자의적으로 내린 뒤, 그것이 우리 공동체가 보편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기준인 것처럼 오도하는 것은 더더욱 '진보'를 지탱해온 서사를 무너뜨릴 수 있다.


또한 진중권이 말한 '진보의 서사'의 붕괴는 불행하게도 그런 맥락과 과정을 통해 이미 현재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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