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 이첩의 ‘의도’를 물고 늘어지는 검찰과 SBS의 수상한 ‘의도’

고일석 기자 / 기사승인 : 2019-12-05 06: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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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언론지수가 세계 41위 밖에 안 되는 이유


국가별 언론자유지수를 산정해서 발표하는 대표적인 기관으로 국경없는 기자회가 있다.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프리덤하우스도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해왔지만 2017년 이후로는 무슨 이유에선지 중단되어 있다.


국경없는 기자회에서 발표하는 언론자유지수에서 우리나라는 2019년 24.94점으로 41위에 랭크되어 있다. 일본(67위)보다 앞서 있어서 아시아 최고이고, 박근혜 정권 시절 70위까지 떨어졌다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43위, 41위로 급속하게 오른 것을 자랑삼아 얘기하지만 그래도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언론자유가 넘치다 못해 썩어문드러지고 있는 것 같은 우리나라가 왜 41위 밖에 안 되는가? 그 가장 큰 이유는 국가보안법이라는 반문명적 법률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슷한 법을 가진 국가는 북한 밖에 없다. 이 법에 따르면 방금 내가 북한을 국가로 부른 것조차 처벌의 대상이 된다.


국가보안법은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단죄하는 법이다. 그래서 만약 내 방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라는 책이 있다면 이를 근거로 내 머리 속에 공산주의 사상이 있다고 판단하여 ‘국가를 참칭하는 반국가 단체(북한)’를 이롭게 한다는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


이 법을 폐지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이 법이 사라지면 우리나라가 온통 간첩 천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과대망상 환자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이 법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이 너무도 지대하여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근거로 처벌을 하거나 사회적 불이익을 주거나 비난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직자나 명망가들이 단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퇴를 요구하거나 사과를 요구하거나 마구잡이로 비난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벌어진다. 지어낸 얘기에 불과한 어떤 책을 이유로 지금도 시달림을 받고 있는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이나, ‘82년생 김지영’의 주연을 맡기로 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공격을 받아야 했던 정유미씨가 그런 경우다.


나는 이런 사고를 ‘국가보안법적 사고’라고 부른다.



‘행위’가 아닌 ‘목적’을 따지려는 사람들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의 부분 집합으로 ‘의도’라는 것이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 이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고, 심지어 법적 조치가 시도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소위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은 첩보 이첩의 ‘의도’를 문제 삼고 있다.


얼마 전 어떤 기사를 보고 기절을 할 뻔 한 적이 있다. SBS 임찬종이라는 기자가 쓴 <[취재파일] 누가 백원우에게 첩보를 제공했나? : 하명수사 의혹의 판단 기준>이라는 기사다. “첩보 이관 행위가 정상적인 절차였다”는 청와대 해명에 대해 “절차는 중요하지 않다. 목적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게 이 기사다.


‘목적’은 곧 어떤 행위의 ‘의도’를 얘기한다.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고 정당하다고 하더라도 ‘의도’가 불순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전형적인 ‘국가보안법식 사고’다. 국가보안법 이외의 모든 법은 ‘행위’를 처벌하지 ‘의도’를 처벌하지 않는다.


법에서 ‘목적’은 중요한 판단 기준이기는 하다. 사람을 죽이려고 죽였느냐, 실수로 죽였느냐에 따라 처벌이 달라진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라도 처벌의 주 대상은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죽인 ‘행위’다. 행위가 빠진 ‘목적’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목적이 없는 행위는 있어도 행위가 없는 목적은 없다.


그래서 설사 ‘하명 수사’의 의혹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판단 대상은 ‘행위’여야 한다. 거기에 ‘의도’와 ‘목적’이 개입시키려면 ‘의도’와 ‘목적’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현될 수밖에 없는 ‘행위’를 따져야 한다.


소위 ‘하명 수사’ 의혹이라면 ‘명령’이나 ‘압력’으로 인식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가 있어야 한다. 그런 행위는 통상적인 절차를 벗어날 수밖에 없다. 수사를 하고 있는 울산경찰청에 별도의 전문을 내리거나, 수사 담당자를 만나서 무슨 논의를 했거나, 울산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당부를 하거나 하는 것 말이다.


하다못해 “청와대 행정관이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닌 관심만 표명하는 것”조차도 직권남용의 판단 대상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직위에 있는 자가 전화를 하는 통상적인 절차를 벗어나는 구체적인 행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찬종이라는 기자는 뜬금없이 ‘목적’의 유무 여부를 입증하거나 반증하기 위해서는 ‘제보자’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보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어떤 행위의 ‘의도’와 ‘목적’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행위’가 아닌 ‘행위자’에서 ‘의도’를 찾으려는 SBS


그러고 보면 SBS는 이 건에 대해 두 번의 [단독] 보도를 했는데 두 건 다 ‘행위’ 그 자체가 아닌 ‘행위자’에 대한 것이다. 첫 번째 단독 보도는 “첩보를 전달한 사람이 백원우”라는 박형철 비서관의 검찰 진술이고, 두 번째는 임형찬이라는 기자가 밝히라고 요구했던 제보자가 울산시 경제부시장이라는 내용이다.


첩보를 수집하거나 접수받아 통상적인 절차를 통해 관계 기관에 이첩하는 행위도 백원우가 하면 “선거개입의 목적이 있다”는 식이다. 도대체 왜? 백원우는 1년 365일 오로지 선거만 생각하고 사는 사람인가? 그의 머리 속에는 오직 선거개입 ‘의도’로만 가득 차있나?


제보자가 울산시 부시장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SBS는 역시 ‘의도’와 ‘목적’을 따지고 있다. 그가 만약 임형찬이라는 기자와 SBS가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목적’으로 관련 사실을 어딘가에 제보했다면 뭔가 혐의를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죄를 묻는다면 울산시 부시장의 행위에 대해 물을 일이지, 청와대의 제보 접수와 첩보 이첩 행위에 물을 일은 아니다. 제보한 사람이 울산시 부시장이 아니라 송철호 시장이라도 청와대의 관계자들이 ‘통상적인 절차’를 벗어나 선거개입의 의도에 따라 발현되는 어떤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대해 직권남용의 혐의를 물을 수 없다.


앞으로 검찰이 어떻게 할지, SBS가 어떻게 보도할지 모르겠지만 만약 최초 제보자가 그런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그 제보를 첩보로 접수하여 전달하고 이첩한 행위에도 같은 ‘의도’와 ‘목적’이 있다고 판단한다면, 어떤 테러범이 우편으로 폭탄을 배달시킨 경우 우체국과 우체부도 테러 혐의로 처벌받아야 한다.


이 역시 국가보안법에서만 적용되는 논리다. 국가보안법은 소위 ‘불온한 내용’을 담은 문서를 그 내용도 모르는 채 전달받아 다른 누구에게 전달하는 행위도 처벌한다. 그런 식으로 수많은 간첩들이 만들어졌다. 제보자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첩보를 전달한 청와대도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 역시 전형적인 국가보안법적 사고인 것이다.


만약 국경없는 기자회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공중파 방송이 이런 국가보안법적 사고에 찌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내년 순위는 아마도 41위가 아니라 70위쯤으로 다시 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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