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추하게 만드는 언론, 조선일보

송요훈 기자 / 기사승인 : 2020-06-19 15: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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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9일 조선일보 보도
6월 19일 조선일보 보도

행정수도 이전 문제로 시끄러울 때의 일이다. 이전 예정지에 취재를 다녀온 후배기자가 들려준 얘기.


평생 농사 지으며 살아온 노부부는 행정수도 이전이 마땅찮았다. 일생의 땀이 배어있는 논밭을 버려야 하는 것도 마땅찮고, 새로 농사를 지을 땅을 찾아야 하는 것도 마땅찮고… 평생을 살아온 곳에서 농사일이나 계속하며 살면 좋겠는데 하시며 이런 말을 하더란다.


이젠 농사는 접어야지. 외지에 나가 사는 아들 셋이 있는데, 명절 때나 오고 그마저도 안 오기도 하고 그러던 애들이 땅이 수용된다고 하니까 매주 번갈아 다녀가는데, 큰 며느리 다녀가면 어찌 알았는지 둘째 며느리 다녀가고, 둘째 아들이 다녀가면 셋째 아들이 다녀가고, 무슨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거 저거 사들고 와서 불편한 데 없느냐 필요한 거 없느냐 그러는데, 아들네 자주 보니 좋기는 하지만 그게 다 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운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네. 그놈의 행정수도가 뭔지...


노부부가 걱정하는 건 자식들 간의 불화다. 노부부는 행정수도 탓을 했지만, 그게 어디 행정수도 탓인가. 돈 때문이고 인간의 욕심 때문이지.


나이 들면서 또래들의 술자리에 가면 가끔 이런 말이 오간다. 집 있다고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하지 말라더라. 주택연금으로 매달 얼마씩 받아 다 쓰고 죽으라더라. 집이 있을 때는 살갑게 굴더니 주택연금 가입하니까 자식들 표정이 싹 바뀌더라는 노인들도 있더라. 매월 받는 돈에서 며느리와 손주들한테 용돈이라도 주는 게 낫다고 하더라.


조선일보가 고 손영미 소장이 돌보던 쉼터를 떠나 양아들 집으로 간 길원옥 할머니를 매개로 연일 ‘알려졌다’는 미확인 ‘단독 기사’에 사설까지 동원하여 마치 무슨 부정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망자와 정의연을 집요하게 물고 뜯는다. 보도라 할 수 없는 악행을 보면서 행정수도 이전으로 논밭이 수용되는 노부부가 생각났다.


할머니가 걱정되었으면 진작에 모시지 그랬나, 양아들이라는데 어떤 양아들인가, 쉼터에 있는 할머니에게서 왜 돈을 받아간 걸까, 신분이 목사라는데 생계가 어려워서 그랬을까? 이런 저런 의문이 들었고, 돈이 사람을 추하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궁금증이 풀리기는커녕 기사에는 망자를 물어뜯는 악의만 번득였다.


결국 정의연이 해명을 해야 했는데, 양아들이라는 사람은 최근에 법적으로 양자 신분을 취득했고, 할머니가 여러 차례 돈을 보내줬고, 며느리의 요구로 손영미 소장이 돈을 송금하기도 했단다.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죽인 펜이 죽은 사람을 난도질하고 있다.


오늘 조선일보에는 길원옥 할머니가 마포쉼터를 떠나면서 "이제 우리집 간다!"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는 '미확인' 단독 기사가 실렸다.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헌신한 고 손영미 소장이 할머니를 감금이라도 했다는 건가. 제목부터 참 악의적이다. 조선일보의 보도가 악의가 아니고 사실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할머니는 양아들네 집에서 건강하게 편하게 오래 사셔야 한다.


이게 언론의 자유인가. 언론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언론의 자유보다 언론의 책임을 중시한다던데, 언론 보도와 관련한 판결도 그런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언제까지 언론의 자유를 빙자한 방종을 이대로 방치해야 하는가. 아침부터 속이 답답해진다. 내 탓이다, 이게 다 내 탓이다. 아침부터 조선일보 기사를 본 내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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